(김병권기자) 의무 휴업 폐지된 동대문구 청량리 시장 점포 31곳 보니
일요일이었던 지난 10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의 한 대형 마트. 일요일 영업 재개 한 달을 맞은 마트는 개점 전부터 손님들이 줄을 설 정도로 붐볐다. 이날 마트에서 500m가량 떨어진 청량리 전통 시장은 폭 2m 남짓 통로가 손님으로 가득 찼다. 어린 딸과 시장을 둘러보던 방모(40)씨는 “마트에서 딸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사고 시장으로 걸어왔다”며 “시장 과일 가게가 저렴해 딸기를 사러 왔다”고 했다.
지난 10일 서울 동대문구의 청량리 청과물 시장이 장을 보러 온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이 시장 상인들은 대형 마트 일요일 강제 휴무 규제가 없어진 뒤 오히려 매출이 늘었다고 했다. /김영우 기자
대형 마트 의무 휴업이 해제된 서울 동대문 지역의 일요일 전통 시장 상권이 활기를 띠고 있다. 대형 마트 의무 휴업은 전통 시장 상권을 지키겠다며 지난 2012년 시작됐다. 하지만 현실에 뒤처진 규제라는 비판이 잇따랐고, 동대문구는 지난달 11일부터 대형 마트 일요일 영업을 허용했다.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르면, 대형 마트는 매월 공휴일 이틀을 휴점해야 하는데 이해 당사자와 합의를 거치면 평일로 휴무일을 바꿀 수 있다. 동대문구는 작년 말 구내 전통 시장, 유통 업계와 상생 협약을 맺고 휴무일 변경을 합의했다. 상인들은 규제를 풀자 오히려 전통 시장이 살아나고 있다고 했다.
본지 기자가 지난 10~12일 청량리 일대 시장 5곳에서 만난 상인 31명 중 10명은 “대형 마트 의무 휴업 규제가 폐지된 후 매출이 늘었다”고 했다. 정의건(70) 동대문구 전통 시장 상인연합회장은 “규제가 풀리자 청량리역 앞 시장 점포들의 주말 매출이 최대 50% 늘었다”며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남녀노소 많아져서 ‘요즘 청량리는 명동처럼 북적인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고 했다.
대형 마트 영업 재개가 전통 시장 매출 상승으로 이어진 건 손님들이 마트와 시장에서 사는 물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서울 성동구에서 청량리 청과물 시장을 찾은 임모(44)씨는 “공산품을 살 때는 마트에 가거나 인터넷 배송을 이용하지만, 시장에는 주로 과일이나 밑반찬을 사러 간다”며 “마트에 들러 주차해 두고, 시장에 간다”고 했다. 상인 오모(62)씨는 “지난주에 마트에선 사과 한 박스가 10만원인데 시장은 거의 반값이라며 좋아하는 손님을 봤다”고 했다. 경동시장 광성상가에서 버섯 장사를 하는 송모(59)씨는 “마트에 들렀다가 채소 값이 너무 비싸서 시장에 처음 와봤다는 20대 손님을 주말에 만났다”며 “규제가 풀리기 전보다 매출이 10% 정도 올랐다”고 했다.
대형 마트 영업 재개로 일요일 유동 인구가 늘면서 전체 상권이 살아났다는 평가도 있다. 죽 매장을 운영하는 A씨는 “마트에 들렀다가 우리 죽집에서 죽을 사 가는 사람이 많아져서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매출이 10~20%는 늘었다”며 “일단 시장 근처를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많으니 장사가 잘된다”고 했다. 40년째 청량리 전통 시장에서 족발집을 운영 중인 정모(60)씨는 “마트에 들렀다 겸사겸사 시장에도 놀러 오는 사람이 많아진 덕에 매출이 상당히 늘었다”고 했다.
대형 마트 일요일 영업을 재개한 다른 지역의 소상공인 매출도 증가하는 추세다. 대구시는 작년 2월 전국 최초로 대형 마트 의무 휴업일을 둘째·넷째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바꿨다. 대구시가 이후 6개월간 대형 마트 인근 수퍼마켓, 음식점 등 주요 소매업 매출을 분석한 결과 전년 같은 기간보다 19.8% 증가했다고 한다. 서울 서초구는 지난 1월 대형 마트 일요일 휴업 규제를 폐지했다. 의류 매장을 운영하는 유재연(71)씨는 “작년까지만 해도 대형 마트가 쉬는 둘째·넷째 주 일요일은 ‘장사 안될 날’이라 생각하고 나왔는데 이제는 그럴 일이 없다”며 “일요일 매출은 20% 정도 확실히 늘었다”고 했다.
다만, 이런 호평에도 대형 마트 규제 폐지가 전국적으로 확대될진 미지수다. 국회에서 관련 법 논의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대형 마트 의무 휴업을 완화하는 내용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지만, 야당의 반대로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여러 상권이 밀집돼 있는 도심에는 대형 마트 주변에 골목 상권도 형성돼 있기 때문에, 마트 일대가 커다란 ‘쇼핑 타운’으로 기능한다”며 “마트 손님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주변 상권을 찾는 유동 인구가 늘고 소상공인 매출이 늘어나는 낙수 효과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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