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오후 발 디딜 틈 없는 서울 광장시장의 모습. (사진=최수진 기자)
평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에는 젊은 외국인들이 넘쳐났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들리는 언어가 바뀔 정도로 국적도 다양했다. 상인을 제외한 한국인을 찾기 힘들었고 대부분은 해외에서 온 관광객이었다. 노점상들은 이들을 잡기 위해 “히어 히어(Here, Here)”, “싯 오케이(Sit Okay)”를 반복했다.
한낮 기온이 섭씨 영상 30도까지 올라 시장 내부는 덥고 습했지만 관광객들은 개의치 않았다.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이곳저곳 사진을 찍고 둘러보기 바빴다. 시장 중앙 먹자골목으로 들어서자 음식을 맛보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외국인들이 줄을 서 기다리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이들 앞에 놓여진 음식은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빨간 닭발, 낙지탕탕이….
이제 전통시장은 저녁 반찬을 사러 가는 곳이 아니다. 외국인에게는 ‘K-문화’ 체험을 위해 방문해야 하는 필수 코스로 자리 잡고 있고 한국의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게는 레트로(복고)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성지로 떠오르고 있다. 지역 관광, 상권 확장의 인프라 역할을 하는 시장도 늘고 있다.나물 장사 사라지고 ‘영어·한자 메뉴판’이전통시장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서울 광장시장·남대문시장·풍물시장·통인시장·경동시장뿐만 아니라 강원도 속초 관광수산시장, 강릉 중앙시장, 양양시장, 대구 서문시장, 경주 경주 중앙시장, 부산 부평깡통시장, 해운대시장, 제주도 올레시장, 동문재래시장 등 각 지역의 대표 전통시장이 지역 명소로 변모하고 있다.
구글에서 ‘한국 전통시장(Korean Traditional Market)’을 검색하면 한국관광공사(KTO)가 등록한 전통시장 게시물이 가장 먼저 나온다. KTO는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의 편의를 위해 해당 게시글을 통해 통인시장·남대문시장·광장시장 등 전국 16개 전통시장을 소개하고 있다.
KTO는 “한국의 전통시장은 다양하고 독특한 장면을 보여준다”며 “활기찬 에너지, 고소한 냄새,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흥미로운 물건들이 있다”고 설명한다.
전통시장은 외국인들의 주요 관광 코스가 되면서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다. 한국의 분위기를 느끼고 ‘K-로컬 푸드’를 체험할 수 있는 ‘이색 체험 공간’이 됐다. 과거처럼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 길바닥 곳곳에 채소와 구황 작물 등을 진열해 놓고 인근 거주자들만 찾는 곳이 아니다. 한국 최초의 상설 시장인 광장시장만 가도 그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주말은 물론 평일 대낮에도 외국인 관광객들이 대부분이고 이들은 시장 중앙의 분식집을 이용하기 위해 시장을 찾는다.
외국인들의 유입으로 ‘메뉴판’에도 변화가 생겼다. 관광객들이 확인하기 쉽게 사진을 부착하는 것은 물론 한국어·영어·한자로 메뉴를 표기하고 있다. 또한 각 점포의 특징과 연혁에 대한 정보도 영어와 한자로 적어 둔다. 현금 결제·계좌 이체뿐만 아니라 카드 결제와 페이 결제도 가능하다.
영어, 중국어로 적힌 전통시장 한 노점상의 메뉴판. (사진=최수진 기자)
“인스타그램에 올려야죠” MZ세대에겐 ‘레트로 체험존’MZ세대의 필수 방문 코스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 포털사이트에 각 지역명을 검색하면 ‘서울 시장 투어’, ‘부산 시장 투어’, ‘제주도 시장 투어’ 등과 같은 시장 관련 연관 검색어가 나온다. 시장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면서 ‘시장카세(시장+오마카세)’라는 신조어까지 나오고 있다.
그중에서도 최근 가장 관심을 받는 곳은 충남 예산시장과 서울 경동시장 등이다. 예산시장은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의 지역 상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리모델링을 마친 지난 1월 이후 방문객이 늘었다. 예산시에 따르면 전국 각지에서 평일 기준 5000명, 주말에는 1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예산시장을 찾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경동시장은 ‘이색 데이트 코스’, ‘전통시장 핫플’, ‘레트로 감성 공간’ 등의 연관 검색어를 통해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특히 지난해 11월 새로 문을 연 스타벅스 ‘경동 1960점’이 시장의 인기에 영향을 미쳤다. 폐극장을 리모델링한 곳으로, MZ세대 방문객들의 인증 코스로 떠오르고 있다.시장에 대한 젊은층의 관심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실제 인스타그램에서 해시태그 기능(특정 검색어 결과만 추출하기 위해 ‘# 기호’를 붙인 형태)을 활용해 ‘전통시장’을 검색하면 10만2000개의 결과물이 나온다.
이 밖에 ‘시장투어’를 검색하면 3만1000개의 게시물이, ‘시장 맛집’으로는 3만8000개의 게시물이 뜬다. 인스타그램 사용자 대부분은 떡볶이·호떡·김밥·튀김 등 전국 각지 시장에서 구매한 먹거리를 촬영해 방문을 인증하고 있다.
유튜브도 마찬가지다. ‘전통시장’ 또는 ‘시장 브이로그(일상을 촬영한 영상)’ 등을 검색하면 전통시장에서 제작한 다양한 콘텐츠가 쏟아진다. 특히 2030세대의 유튜버들은 시장 내 유명 맛집을 가거나 빈티지 아이템을 쇼핑하는 영상을 찍어 조회 수를 올리고 있다.
외국인들과 MZ세대의 유입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최수진 기자)
인프라가 되는 전통시장정부와 기업도 전통시장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5월 3일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대한민국 전통시장의 매력을 알릴 ‘K-관광 마켓’ 10선을 선정했다. 서울 풍물시장, 인천 신포국제시장, 대구 서문시장, 광주 양동전통시장, 수원 남문로데오시장, 속초 관광수산시장, 단양 구경시장, 순천 웃장, 안동 구시장연합, 진주 중앙·논개시장 등이 그 대상이다.
각 시장이 가진 고유의 매력과 주변 관광지와의 연계성, 지역 경제 견인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다. 문체부는 전통시장의 매력을 키워 ‘K-관광 마켓’을 대한민국 대표 관광 상품으로 육성할 방침이다.
또한 전통시장을 앞세워 지역 인프라를 형성할 계획이다. 전통시장의 즐길거리·먹거리·볼거리를 발굴하고 연계 관광지와 결합한 관광 코스를 개발하는 방향이다.
한국의 유통업계도 전통시장 활성화와 상생을 위해 적극적이다. 이마트는 2016년부터 최근까지 노브랜드 전문점을 전통시장 내 오픈해 젊은 고객의 방문을 유도하고 있다. 노브랜드 외에도 아이들을 위한 키즈라이브러리·카페 등 고객 쉼터, 시장 환경 개선 사업 등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현재 노브랜드 상생점은 충남 당진어시장·삼척중앙시장·경동시장 등 16개점으로 확대됐다. 특히 2018년 오픈한 경동시장 노브랜드 상생점은 최초로 시장 상인이 먼저 요청해 오픈한 지점이다. 오픈 초기 상생스토어가 들어선 2층 상인들의 매출이 평균적으로 20% 정도 증가했고 신세계 이마트 어린이 희망놀이터가 들어선 곳 옆에 자리한 미용실은 월매출이 50% 증가하기도 했다.
기업 마케팅에도 전통시장이 활용되고 있다. 제주맥주는 5월 말까지 광장시장에서 팝업스토어를 진행한다. 출시 6주년을 맞은 ‘제주 위트 에일’과 한국 길거리 음식의 조합으로 특별한 미식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결정이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