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시장 구조 급변으로 침체에 빠진 부산 전통시장이 생존을 위해 새롭게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빈 점포가 청년 창업가들의 문화공간이나 편집숍으로 바뀌는가 하면, 일부 시장에선 자체 배달앱을 운영하며 새로운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7일 부산시에 따르면, 지난달 12일 수영구 현대종합상가시장이 문을 닫았다. 이곳은 상가형 시장으로 상점 수가 점점 줄다 결국 2곳만 남게 돼 전통시장 등록을 취소하게 됐다. 온라인 유통플랫폼이 커지는 등 유통시장 변화로 전통시장의 침체가 이어지며 부산에선 2014년부터 9년간 5곳의 전통시장이 문을 닫았다. 현재 부산에는 227곳의 전통시장이 있지만, 실제로는 영업하지 않거나 폐점 직전 수준의 시장도 다수 있다.
하지만 일부 전통시장에선 젊은 창업가들을 중심으로 변화의 분위기가 감지된다. 지난 3월 23일 해운대구 반송큰시장 안에 문화공간 ‘풍류다방’이 문을 열었다. 개소식에는 판소리와 성악 공연으로 오랜만에 시장이 떠들썩했다. 이곳은 해운대구청이 전통시장의 빈 점포를 청년 창업 공간으로 대여하는 ‘청년 창업 디딤돌 사업장’이다. 구청이 인테리어 비용, 1년간의 점포세 등을 지원했다. 오랫동안 비어있던 폐점포가 1층은 공연장, 2층은 청소년과 청년 예술가를 위한 연습 공간으로 환골탈태했다.
국악·클래식 퓨전공연팀 ‘앙상블 이도’를 운영하는 최삼중(30) 대표는 지역에서 문화예술을 쉽게 즐기기 힘들다는 점에 착안해 리모델링 비용으로 사비 2000만 원을 더 들여 이곳을 열었다. 그는 지역에 신규 공연장을 만들어 문화예술 일자리를 제공하고,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문화예술 공간으로 만들 목표다. 악기를 배우고 싶어하는 청년 20여 명에게 전문 음악가와 일대일 수업 기회를 제공하고 반송 마을 이야기를 담은 문화공연도 만들 계획이다.
최 대표는 “전통시장을 살리려면 그 지역만의 문화와 행사를 접목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며 “쉽진 않겠지만 이곳이 사람들이 찾는 공간으로 바뀌면 덩달아 침체한 상권도 살아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부산 최초로 모바일 장보기 앱을 도입한 전통시장도 있다. 수영구 망미중앙시장은 2020년 ‘망미장터’의 운영을 시작했다. 앱을 통해 장을 보고 상인이 직접 집 앞에 신선한 식재료를 배달해 준다. 망미장터에는 망미중앙시장의 절반 이상인 상점 51곳이 입점해 총 2600개 상품을 판매 중이다. 누적 상품 판매도 2만 개를 넘었다. 그동안 수영구와 연제구 등 인근에만 배달했지만, 지난 2월부터는 부산 전 지역으로 새벽 배송도 시작했다. 울산이나 경기도 등 다른 지역 전통시장 상인도 망미장터의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견학도 오고 있다. 김주영 망미중앙시장 디지털전통시장사업소장은 “중기부 디지털 전통시장 특성화 사업에 선정돼 우수등급 평가를 받았고, 다른 지역 상인들도 교육 문의가 많이 오고 있다”고 밝혔다.
전통시장 내 건물이 MZ세대들이 찾는 공간으로 탈바꿈한 사례도 있다. 부산진구 전포놀이터시장에서 절로 운영되던 2층 건물을 한 사업자가 지난해 매입해 전면 리모델링했다. 지하에는 소품 가게, 1층과 2층에는 카페와 술집, 식당 등이 입점해 젊은 층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전포놀이터 상인회 관계자는 “건물 리모델링 이후 지나가던 20·30대 젊은 층이 확실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