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지역사랑상품권 사용처 축소에 지방자치단체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소상공인 보호를 위한 불가피한 조처지만, 사용자 편의나 상품권 활성화 측면에선 부작용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도 가맹점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규모 지자체들은 무작정 정부 방침을 따를 수도 없어 속앓이다.
15일 경남 고성군에 따르면 군은 행정안전부의 ‘2023년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지원 사업 종합 지침’에 따라 그동안 ‘고성사랑상품권’을 사용할 수 있었던 점포 85곳에 대해 가맹점 등록을 취소하기로 했다.
취소 대상은 농·축협하나로마트 24곳, 중형마트 2곳, 주유소 8곳, 병원·약국 6곳, 대기업 운영 편의점 2곳, 기타 업종 13곳, 편의점 택배 서비스 30곳이다.
고성사랑상품권은 지역 소상공인과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 2018년부터 발행 중인 지역화폐다. 전국에서 사용·환전이 가능한 기존 온누리상품권과 달리 지역 내 음식점과 주유소같은 영세 점포와 전통시장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상품권 상당량이 영세점포가 아닌 농협마트나 병원·약국 등에서 소비되면서 오히려 ‘빈익빈 부익부’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왔다. 실제 대다수 지자체 상품권의 매출 30% 이상을 농협마트 등 특정 매장이 독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행안부는 지난 2월, 연 매출 30억 원을 넘는 점포는 지자체 상품권을 취급하지 못하도록 관련 지침을 개정했다. 기존 가맹점도 기준 매출을 초과하면 등록을 취소해야 한다.
고성군은 오는 22일까지 이의신청을 받아 취소 대상을 확정하고 6월 1일 시행에 들어간다. 고성 외 자체 상품권을 발행 중인 창원시(6만 2800여 곳 중 1800여 곳)와 김해시(3만 700여 곳 중 940여 곳), 양산시(1만 6200여 곳 중 230여 곳), 거제시(1만 5000여 곳 중 150여 곳), 통영시(9000여 곳 중 160여 곳), 의령군(1006여 곳 중 38곳) 등도 같은 절차를 진행 중이다.
이를 두고 찬반이 분분하다. 소상공인연합회는 “매출 반등을 기대하게 되는 ‘가뭄의 단비’와 같은 소식”이라며 “특정 몇 매장에 소비가 과도하게 쏠리는 것이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지, 수천, 수만 개 매장에서 골고루 소비가 이뤄지는 것이 도움이 될지는 삼척동자도 판단이 가능하다”고 환영했다.
반면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의료, 여가, 소매 시설이 부족한 농촌 현실을 헤아리지 않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며 “농업인을 비롯한 지역민의 편익과 선택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지침 개정으로 농촌 지역 주민들이 주로 찾던 농협마트나 영농자재판매장에서 더는 상품권을 사용할 수 없게 됐다는 이유다.
연합회는 “농촌의 열악한 대중교통과 높은 고령화율을 감안하면 상품권 이용에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다”면서 “소상공인 지원도 중요한 과제지만, 지역 특수성과 소비자 기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제도 개선이 이뤄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방의회도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고성군의회는 “가장 많이 이용하는 곳에서 사용 못 하게 되면 매우 불편하고 혼란스러울 것”이라며 “소비자 입장에선 쓸 곳도 없는 상품권을 굳이 이용할 필요가 없다”고 꼬집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지침을 수행해야 하는 지자체는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자칫 상품권 시장 자체가 쪼그라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대체재가 널린 마당에 한쪽을 막는다고 반대쪽이 이득을 보는 건 힘들다. 전통시장을 살리겠다며 도입한 ‘대형마트 의무휴업’이 그랬다”면서 “정부 방침이니 따라야 하지만, 일단은 나서지 않고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고 귀띔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 강대한 기자 kd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