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부가 11년째 표류 중인 부산공동어시장(이하 어시장) 현대화 사업에 대해 내년에도 첫 삽을 뜨지 못하면 아예 무산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어시장과 부산시 간 갈등이 해소되지 않으면 2000억 원에 가까운 국·시비가 날아갈 수 있는 셈이다.
10일 〈부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해수부는 지난 5일 부산시와 어시장을 정부세종청사에 불러 긴급회의를 열었다. 시와 어시장이 대체 시설 설치를 둘러싸고 갈등을 보이자(부산일보 12월 1일 자 5면 보도) 중재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시와 어시장은 올 5월 조달청에 적정성 검토를 마친 어시장 현대화 사업 설계안을 변경 없이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해수부 수산정책실 관계자는 “해수부도 사업 추진에 강한 의지를 갖추고 있으며, 기관 사이에 입장 차가 있다면 적극 중재해 내년에는 무조건 첫 삽을 뜰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내년에도 착공하지 못한다면 사업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해수부 관계자는 “내년에도 과도한 설계 변경 등 변수로 인해 사업이 지연되면 타당성 재검토, 더 나아가 사업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이 있다”며 “국회에서도 사업 지연에 우려를 보이고 있으며, 현대화 사업이 취소되면 2000억 가까운 예산을 다른 사업에 활용할 여지가 많은 것도 사실”이라고 전했다.
실제 대체 시설을 둘러싼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현대화 사업은 수산물 위판에 최대한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위판장과 건물 등 어시장 시설을 3분의 1씩 나누어 순서대로 공사한다. 그럼에도 공사 기간에는 위판장과 직원 휴게, 사무 공간 등이 일부 줄어들게 된다.
시와 어시장이 입장 차를 보이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어시장은 공사 동안 업무에 차질을 빚지 않으려면 임시 위판장 등 ‘대체 시설’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시장은 사업비 안에서 예산을 조정하거나 별도 지원을 통해 대체 시설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어시장 자체 계산에 따르면 비용은 약 99억 원이다.
반면 시는 3년 남짓 걸리는 공사가 다 끝나면 철거해야 하는 임시 시설에 100억 원 가까운 돈을 부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시비를 임의로 늘리는 것도 불가능하다. 총사업비가 15% 이상 늘어나면 기재부에서 타당성 재조사에 들어가 국비 지원이 크게 줄 우려가 있다. 또 공사는 10월부터 2월까지 ‘성어기’를 피하기 때문에 대체 위판장 없이도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시는 내다봤다.
이에 따라 어시장이 대체 시설을 재차 요구하거나, 중도매인이나 항운노조 등 현대화사업으로 불편을 겪는 당사자들이 반발할 여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 경우 시가 갈등을 잘 풀어나가지 못한다면 사업은 또다시 표류할 수 있다. 만일 2000억 국·시비가 투입되는 현대화 사업이 10년 넘게 지지부진하다 끝내 무산된다면 관계 기관 어느 곳도 책임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어시장 현대화 사업은 2012년 박근혜 정부 공약에 포함되며 본격 시작됐다. 2013년 시가 추진계획안을 마련하고 이듬해 예비타당성 조사까지 마쳤다. 하지만 어시장 내 복잡한 이해관계와 시의 조율 실패 등의 이유로 공전을 거듭했다. 2019년에는 시가 공영화를 추진하기도 했지만 이마저 논의 끝에 백지화됐다. 2021년 시와 어시장은 현대화사업을 재개하기로 했으며, 올해 기재부가 물가 상승분 551억 원 증액을 승인해 다시 궤도에 올랐다. 총 사업비 2284억 원 중 국비로 70%가 지원된다. 나머지는 시가 20%, 어시장이 10%를 부담한다.